
2019년 개봉한 영화 ‘엑시트’는 독특한 장르인 재난 코미디라는 틀 안에서 한국 사회의 현실을 유쾌하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유독가스로 가득 찬 도심 속에서 벌어지는 탈출기라는 긴박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유쾌한 유머와 가족애, 청년 세대의 자존감 회복 등 다양한 메시지를 담아내며 관객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 엑시트가 왜 지금 다시 봐도 ‘웃기고도 슬픈’ 작품인지, 생존 기술, 가족과의 관계, 그리고 청년층 현실 인식을 중심으로 자세히 분석해보겠습니다.
웃음 뒤에 숨은 생존 전략: 등산이 살렸다
‘엑시트’는 도시 재난이라는 낯선 장르를 유쾌하게 풀어낸 작품이지만, 그 안에는 꽤나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유독가스로 가득 찬 도심 한복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인공 용남과 의주는 고층 빌딩을 오르내리며 탈출 루트를 개척합니다. 단순히 도망치는 것이 아닌, 전략적인 판단과 체력, 도구의 활용을 통해 생존 가능성을 끌어올리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놀라움과 동시에 실제 재난 상황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용남이 과거에 ‘등산 동아리 출신’이었다는 설정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평소에는 무시받던 ‘등산 실력’이 위기 상황에서 결정적 생존 수단으로 바뀌는 순간,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로프를 활용한 고공 탈출, 팔힘과 다리힘을 이용한 파이프 타기, 신속한 판단력으로 이어지는 건물 점프 등은 마치 액션 게임을 보는 듯한 스릴을 제공합니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누구나 무언가 하나쯤은 쓸모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유머러스하게 전달합니다.
또한 영화는 ‘도시형 재난’의 특징을 잘 살렸습니다. 갑작스러운 가스 공격이라는 설정 속에서 구조를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며, 영화는 수동적 시민에서 능동적 생존자로의 전환을 보여줍니다. 이는 단지 재난만이 아닌, 오늘날 사회의 다양한 위기 취업난, 불안정한 삶, 경쟁 구조 등 속에서 개인이 주체적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은유로도 읽힙니다. 엑시트의 생존 시퀀스는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현실을 헤쳐 나가는 은유적 장면들입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불편한 애정, 그리고 회복
‘엑시트’의 또 다른 핵심은 가족입니다. 영화의 시작은 주인공 용남의 가족 모임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웃음을 주는 장면을 넘어, 한국식 가족 내에서의 세대 차이와 청년층의 무력감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용남은 취업에 실패하고 백수로 살아가며, 가족들의 눈치와 비교의식 속에 움츠러들어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박인환)의 무심한 듯 뼈 있는 말 한마디, 어머니(고두심)의 애정 어린 잔소리, 누나들의 현실적인 조언들은 많은 청년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을 안깁니다.
하지만 재난이 터지자 이 가족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합니다. 자식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에 부모는 혼신을 다해 구조 요청을 하고, 가족 구성원 모두가 용남의 생존을 기원하며 감정적으로 하나가 됩니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하거나 불편하게 느꼈던 가족이라는 존재가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강력한 유대와 힘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특히 영화 말미, 구조된 후 용남이 어머니와 눈을 마주치며 우는 장면은 단지 생존의 감격을 넘어, 가족 안에서 느끼던 죄책감, 무력감, 사랑이 동시에 폭발하는 복합적 감정을 보여줍니다. 가족은 때로 부담이지만, 동시에 가장 큰 지지체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슬며시’ 웃음과 눈물 속에 녹여냅니다.
웃픈 현실 공감: 청년 세대의 자존감 회복기
‘엑시트’는 단순히 재난 상황을 그린 영화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현대 청년 세대가 겪고 있는 현실적인 자존감의 문제가 깔려 있습니다. 주인공 용남은 명문대 출신에 한때 장래가 촉망됐지만, 현실은 백수입니다. 취업 실패 후 부모 집에 얹혀살며 주변 사람들에게 ‘한물간 청년’으로 취급받는 상황은 많은 2030 세대의 자화상과 겹칩니다.
하지만 위기가 터졌을 때, 용남은 그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끝까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 과정에서 용남은 자신도 몰랐던 자기 안의 능력과 용기를 발견하고, 잃어버렸던 자존감을 되찾습니다. 누군가를 구하고, 고층 빌딩을 기어오르고,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그는 더 이상 백수가 아니라 영웅이 됩니다.
이 영화가 특히 ‘웃프다’는 평을 받는 이유는, 바로 이런 성장 서사가 너무도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웃긴 장면 뒤에 숨어 있는 눈물, 코미디 속에 비치는 씁쓸한 진실, 그리고 결국엔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내는 주인공의 모습은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현실에서의 위로로 작용합니다. 오늘날 많은 청년들이 ‘내가 무슨 쓸모가 있지?’라고 자문할 때, 엑시트는 조용히 이야기합니다. “당신 안에는 아직 보여주지 않은 능력이 있다”고.
‘엑시트’는 유쾌함과 긴장감, 웃음과 눈물, 현실과 판타지를 절묘하게 결합한 한국형 재난 코미디 영화입니다. 생존 스킬의 활용, 가족 간의 감정 변화, 그리고 청년층의 성장 이야기를 모두 담아내며, 단순한 오락을 넘어 삶에 대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지금 다시 봐도 여전히 ‘웃기고도 슬픈’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위기의 순간,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 그리고 그 해답은 우리 모두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