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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모이 분석 (언어운동, 조선어학회, 실화바탕)

by gamja5793 2025. 11. 2.

한국 영화 말모이 포스터 사진

영화 말모이는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의 ‘우리말 사전 편찬 운동’을 배경으로 한 실화 기반 작품이다. 이름도 직업도 불분명한 소시민이 조선어학회와 함께 언어를 지키기 위한 사투에 뛰어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일제의 언어 말살 정책에 맞선 민중의 저항과, 그 안에서 피어난 연대와 감동을 생생히 전한다. 본 글에서는 영화 말모이의 핵심 주제인 언어운동, 실제 역사 속 조선어학회의 활동, 그리고 실화를 영화적으로 재현한 방식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을 시도한다.

일제강점기 언어운동의 의미와 배경

영화 말모이의 가장 중심적인 주제는 언어운동, 즉 ‘말’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의 저항이다. 일제강점기 후반기, 조선은 일본어 교육을 강제당했고, 학교, 공공기관, 신문, 잡지 등 모든 영역에서 조선어 사용이 금지되거나 제한되었다. 이는 단순한 언어 억압이 아니라, 조선 민족의 정체성과 정신을 지우기 위한 조직적 정책이었다. 일본은 “말을 잃으면 정신이 무너지고, 정신이 무너지면 민족도 사라진다”는 점을 알고 있었고, 조선어 말살을 통해 식민 통치를 더욱 공고히 하려 했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말모이’는 단순한 사전 편찬 프로젝트가 아니라, 조선인의 정신을 지키는 운동이 되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평범한 인물들이다. 주인공 류정환(유해진)은 학식도 없고 정치적 이념도 없다. 그러나 ‘말’을 통해 가족을 지키고, 기억을 이어가며, 조선어학회와 연대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관객은 ‘말’이 단순한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민족의 정신, 공동체의 기억, 정체성의 중심임을 깨닫게 된다.

말모이라는 이름 자체도 상징적이다. ‘말을 모은다’는 순우리말 표현은 조선어가 사라져가는 시대 속에서 언어를 수집하고 기록하는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영화는 소리 없이 사라져가는 방언, 지역어, 어휘들을 수집해 민족의 기억을 되살리고자 한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조명한다.

또한 영화는 언어운동을 통해 저항의 또 다른 형태를 보여준다. 총을 들고 싸우는 투쟁이 아니라, 펜으로, 종이로, 그리고 귀로 듣고, 손으로 기록하는 ‘조용한 혁명’이다. 이는 오늘날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는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다. 말을 지키는 것이 곧 사람을 지키는 것임을 말모이는 분명히 말한다.

조선어학회의 실존 인물과 역사적 사실

말모이는 실존했던 조선어학회 사건을 기반으로 한다. 조선어학회는 1921년 창립된 조선어연구회를 모체로 하여, 1931년 공식 출범했다. 이들은 조선어 문법, 철자법 통일, 사전 편찬 등 체계적인 조선어 보존 및 연구 활동을 진행했으며, 이는 일제의 강압적 정책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문화운동이었다.

1942년, 일제는 조선어학회의 국어사전 편찬 사업을 ‘조선어를 통한 민족정신 고취 및 반일사상 확산’으로 간주하고, 관련자 33명을 체포하여 고문과 수감, 징역형에 처하는 조선어학회사건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언어 연구라는 명목으로 활동하던 지식인들이 국가 권력에 의해 탄압당한 대표적인 문화탄압 사례로 기록된다.

영화 속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다. 조선어학회 회장 ‘정세훈’(윤계상 분)은 이윤재 선생을 모티프로 하였고, 국어학자인 ‘김판수’는 최현배 선생을 반영한 인물이다. 이들은 사전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수천 개의 어휘를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집하고, 사라져가는 단어들을 구술로 기록하는 작업을 수년간 이어갔다. 단어 하나를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 마을 어르신, 장사꾼, 농민 등 민중의 입을 빌려 뜻과 뉘앙스를 확인하던 그들의 집념은 영화 속에서도 진정성 있게 그려진다.

이 과정에서 언어학은 단지 학문적 탐구가 아닌, 민족의 존립과 직결되는 영역이 되었다. 조선어학회는 '말'을 지키는 것이 곧 '사람'을 지키는 일임을 알고 있었다. 단어 하나, 방언 하나도 잊히지 않게 남겨두고자 했던 그들의 노력은 단순히 사전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민족의 기억을 보존하고 미래에 전하는 일이었다.

영화 말모이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되, 지나치게 교훈적이거나 영웅주의적으로 흐르지 않고, 인간적인 시선에서 그들을 조명한다. 특히 민중의 삶 속에서 말을 수집하고, 이를 연결하며 하나의 사전을 만드는 과정은, 집단의 노력과 헌신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조선어학회는 이 영화의 핵심이며, 언어를 지킨 이들의 치열한 분투는 오늘날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실화 기반 영화의 재현과 감성적 힘

말모이는 실화를 기반으로 하지만, 다큐멘터리처럼 건조하지 않다. 오히려 이야기의 힘, 인물의 감정, 극적 전개를 통해 관객에게 큰 감동을 준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가 가진 감성적 설득력이며, 실화 영화로서의 성공 요소다.

영화는 실존 인물을 1:1로 묘사하기보다는, 그 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인물들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유해진이 연기한 ‘류정환’은 실제 인물이 아니지만, 당시 언어운동에 참여한 무명의 민중을 대표하는 캐릭터다. 그는 글을 읽지 못하지만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을 위해 뛰어든다. 이 설정은 관객에게 “누구나 말과 글을 지킬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전한다. 엘리트 중심이 아닌, 민중 중심의 시선이 영화 전반을 감싸고 있어 더욱 따뜻하게 다가온다.

또한 영화는 시대적 배경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도 섬세함을 잃지 않는다. 거리의 간판, 신문지 한 장, 대화 속 억양 등 작은 소품과 표현을 통해 당시의 분위기를 충실히 재현하며, 관객을 자연스럽게 그 시대로 끌어들인다. 특히 흑백으로 처리된 과거 장면들과 컬러로 보여주는 현재 장면의 대비는 영화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감정을 유도하는 방식에서도 영화는 절제를 택한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들도 과장되지 않으며, 오히려 조용하고 담담한 톤으로 관객의 가슴을 찌른다. 예를 들어,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 ‘잊지 마라, 우리 말’이라는 대사로 표현될 때, 이는 단순한 언어적 요청을 넘어 시대의 아픔과 민족의 염원을 상징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기록의 가치’를 강조한다. 말이 사라지지 않도록, 단어 하나하나를 적어 내려가는 장면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 펜 끝에서 흘러나오는 조선어, 잉크 냄새, 종이 질감까지도 관객은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실화를 영화로 옮길 때 발생할 수 있는 딱딱함이나 거리감을 감성적으로 완화시킨 점이 말모이의 큰 미덕이다.

영화 말모이는 단순한 실화 재현을 넘어, 언어가 곧 정신이고 역사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조선어학회의 치열한 언어운동, 민중과 학자들이 함께 만든 사전의 가치, 그리고 실화를 통해 되살아난 감동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의 언어와 정체성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말모이, 지금 이 시대에도 꼭 다시 봐야 할 영화다.